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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과학

좋은 음식도 毒…`환자용 식품` 따로 있다

김혜순 기자
김혜순 기자
입력 : 
2018-11-18 17:05:12
수정 : 
2018-11-18 21: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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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미 임상영양학회장 인터뷰

마약성진통제 많이 쓰는 중환자
섬유소 과다섭취하면 사망 위험

한독 치매환자용 `수버네이드`
뇌 등 영양결핍 보충 효과
치료효과 내는 의약품과는 달라
사진설명
"아무리 몸에 좋다고 알려진 음식이라도 환자가 자칫 잘못 먹으면 '독'이 될 수 있습니다. 환자 질환이나 상태에 맞게 영양을 제공하는 '환자용 식품' 시장을 키워야 합니다." 이송미 한국임상영양학회 회장은 매일경제와 만나 "만성질환을 앓는 환자들에게 '먹고 기운 내라'는 의미에서 소고기, 생선, 달걀 등을 권하는 경우가 많은데 신장 문제가 있는 환자들이 고단백 식사를 하면 오히려 병이 악화될 수 있다"며 "단백질 최종 산물인 요소질소가 신장을 파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마약성 진통제를 많이 쓰는 중환자들은 위장관 기능이 떨어진 경우가 많다"며 "일반적으로 섬유소가 풍부한 음식을 먹으면 몸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중환자들이 섬유소를 과다 섭취하면 사망에까지 이를 위험이 있다"고 덧붙였다.

'환자용 식품'은 특정 질환을 앓는 환자에게 필요한 영양소를 적절히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1940년대부터 개발되기 시작해 1960년대 상업용 제품들이 처음 출시됐다. 이 회장은 "현재 임상연구 결과를 동반한 다양한 제품이 출시돼 있으며 그 종류만 해도 질병별로 100여 종에 달한다"면서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등 일부 질병은 의사들의 표준 진료지침 중 하나로 환자용 식품 섭취가 들어 있을 정도로 제도화가 상당히 진행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은 환자용 식품 시장 성장 속도가 매우 느리다. 전 세계 시장의 2% 비중밖에 안 된다. 이 회장은 "시장 규모도 작지만 제품 다양성도 매우 부족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2017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반 환자를 위한 균형 영양식이 전체 제품 중 67%를 차지하고 당뇨병이 19%가량, 신장환자용과 장질환환자용이 각각 3.8%, 2.9%를 차지했다.

그는 "특히 소아 환자들을 위한 제품은 시중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어 환자 부모들이 균형 영양식이나 성인용 제제를 구해서 임의로 변형해 자녀들에게 주곤 한다"고 덧붙였다. 일부는 해외 직구 등 불법 유통 경로를 통해 소아 환자용 식품을 구하기도 하는데, 이는 제조처나 유통기한 등이 확실하지 않다는 위험이 있다.

이 회장은 "한국에서 환자용 식품 시장이 본격 형성되지 못하는 이유는 정부 지원이 미흡하기 때문"이라며 "특히 희귀질환은 환자 수가 많지 않아 기업들이 제품 생산과 판매만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라고 강조했다. 미국 유럽 등은 오래전부터 환자용 식품 관리와 규제를 위한 단독 법안이 만들어졌고 건강보험 적용, 세제 혜택을 비롯해 다양한 정부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은 입원 환자가 입으로 식사할 수 없어 튜브를 통해 소화기에 유동식을 주입하는 '경관유동식'을 하게 되면 건강보험 적용을 통해 본인 부담률을 50%까지 낮춰주는 제도가 있다. 그러나 한 끼당 보험 적용 단가가 4000원 정도라 그 가격대 이상 제품은 사용할 수 없다. 이마저도 퇴원 후 외래에서는 지원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 이 회장은 "약값과 병원비 부담만으로도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진 환자가 많은데 100% 자기 부담으로 환자용 식품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충분한 영양 섭취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국내 환자용 식품 시장이 형성되는 초기다 보니 개념도 생소하고 일반인들의 오해가 많은 것 같다"며 "대표적인 것이 한독의 치매환자용 특수용도식품 '수버네이드'"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수버네이드의 경도인지장애 및 경증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 효과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는데도 실제 효과가 있는 것처럼 과장광고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 회장은 "이는 의약품과 환자용 식품을 혼동하면서 생긴 오해"라고 강조했다. 의약품은 해당 질환을 직접 치료하는 약물이고 환자용 식품은 음식물 섭취가 힘들거나 질병으로 인해 특정 영양분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이 식사 일부 보강 또는 식사 대용으로 섭취하는 것이라 개념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경도인지장애나 경증 알츠하이머 치매로 인지기능이 저하된 고령 환자들은 소화기능이 떨어지고 식사를 제때 챙겨먹지 못해 영양 결핍, 체중 감소가 나타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영양소 결핍과 불균형은 이들의 질환을 더욱 악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이 회장은 "수버네이드는 치매 환자들을 위한 균형 영양식에 뇌에 필요한 영양분을 더한 식품"이라며 "환자용 식품은 직접적으로 치매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을 보다 잘 관리하도록 영양 보급을 통해 도움을 주는 데 그칠 뿐 약을 대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환자용 식품은 일반 식품과 달리 환자들의 질병 관리와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임상 근거를 요한다. 이 회장은 "수버네이드 개발회사가 4건의 임상 결과를 발표했지만 2011년 처음 출시한 뒤 7년밖에 지나지 않은 만큼 더 오랜 기간, 더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결과 축적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혜순 기자 / 사진 =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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