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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과학

침으로 비만·암 확률 등 163개 분석

입력 : 
2014-09-17 17:07:46
수정 : 
2014-09-18 15: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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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전자 분석 서비스 기자가 직접 체험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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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이새봄 기자(오른쪽)가 이기호 차움 교수에게서 유전자 분석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이승환 기자]
"다른 사람에 비해 아킬레스건이 약한 편이네요. 운동하기 전에 반드시 스트레칭을 하세요. 발목을 많이 비트는 스키보다는 다리쪽에 하중이 덜 가는 수영이 더 잘 맞겠네요." 마치 전문 헬스트레이너 조언 같은 발언을 한 사람은 하얀색 가운을 입고 진료실에 앉아 있는 의대 교수다. 기자와 마주 앉은 지 10분이 채 안 됐다. 진료실에 들어오는 기자 걸음걸이를 유심히 본 것도 아니다. 그의 자리 앞에는 두툼한 갈색 책 한 권이 놓여 있을 뿐이다.

갈색 책에는 '개인 유전자 총보고서'라는 제목이 쓰여 있다. 이 책은 기자가 약 3주 전 병원을 방문해 손바닥보다도 작은 투명한 플라스틱 통에 뱉은 침의 '결과물'이다.

"쓴맛을 매우 강하게 느끼는 편이라 브로콜리 같은 채소를 잘 못 드시겠는데요? 유당 분해 효소가 없어 아침에 우유를 마시면 바로 배탈이 나기 쉽겠군요. 오메가3가 금방 부족해질 수 있는 체질이라 보충이 필요하고요."

가족조차 알기 힘든 개인정보를 초면의 의사가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이유는 '유전자 분석'이라는 과학기술 발달 덕이다. 유전자 분석 서비스는 타액, 혈액 등을 통해 개인의 유전정보를 분석해 특정 질병이 발병할 확률을 예측해주는 서비스다. 20년 전 한 사람의 유전자 전체를 분석하는 데는 약 13년의 시간과 2조5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갔다. 하지만 지금은 개인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약 일주일로 줄었고 비용도 현저히 감소했다.

대중을 상대로 한 유전자 분석 서비스도 점차 진화하고 있다. 초반에는 유전자 분석을 통해 암, 심혈관계 질환, 유전질환 등 병에 걸릴 확률을 알려주는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제는 식습관 특성, 음식에 대한 반응, 개개인에게 필요한 영양소 추천 등을 포함해 전반적인 라이프스타일을 관리해주는 데까지 발전했다.

기자가 직접 체험해본 유전자 분석 서비스는 올해 초 한국에 들어온 '패스웨이 핏(Pathway Fit)'이다. 200만원 정도 비용을 지불하면 △당뇨, 고혈압, 폐암, 유방암 등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염려하는 주요 24개 질환에 걸릴 위험도 △심혈관계 질환 관련 유전자가 있는지 여부 △와파린, C형 간염 치료제 등 주요 약물에 반응하는 유전자에 대한 정보 △신진대사, 비만, 운동, 영양 등과 관련된 정보 등 총 163종의 유전정보를 알 수 있다.

진료를 담당한 주치의 이기호 차움 식품치료센터 교수(센터장)는 "과거에는 강의 하류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 중류, 상류에서 일어나는 일을 역으로 추측해 올라가 원인을 찾았다면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활용한 후부터는 의사 입장에서도 조금 더 상류에서 환자 문제를 파악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서비스를 통해 기자는 "대장암, 폐암 등 주요 질환에 걸릴 확률은 다른 사람보다 높지 않다"는 안심이 되는 정보와 함께 "체내 엽산 수치가 낮고 나쁜 콜레스테롤(LDL) 수치가 상승할 수 있는 유전적 특질을 갖고 있다"는 염려스러운 정보를 함께 얻었다.

하지만 이 교수는 "유전자 분석을 통해 나온 정보를 마치 '질병을 갖고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가령 콜레스테롤이 높아지는 유전적 특질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콜레스테롤이 높아진다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 교수는 "유전자 분석 결과는 '진단'이 아니라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라고 설명했다.

■ 유한양행·녹십자·한독 등 뛰어들어 국내에서도 다양한 회사들이 유전자 분석 서비스에 뛰어들고 있다. 자금과 영업력을 가진 제약사가 기술력 있는 바이오 벤처기업과 제휴해 사업에 진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장 먼저 유전자 분석 서비스 시장에 진입한 제약사는 DNA링크와 업무 제휴한 SK케미칼이다.

이 회사는 2012년부터 만성질환과 암 등 관련 유전자를 분석해 발병 확률을 예측하는 'DNA-GPS'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지난해 1월 테라젠이텍스와 함께 '헬로진'이라는 서비스로 시장에 진출했다. 암 심혈관질환 등 질병을 예측해 주며 질병 범위에 따라 30만~200만원 정도 비용이 든다.

한독은 미국 대형 유전자 분석 기업 '패스웨이지노믹스'와 협약을 맺고 진케어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를 하고 있다. 100만~200만원 선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시장에 늦게 진입한 후발주자인 대신 영양과 운동 처방 등 라이프스타일 관리 전략으로 차별화하고 있다.

녹십자 유전체분석 부문 자회사인 '녹십자 지놈'은 지난 4월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녹십자는 유전적 요인에 의한 암 발병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 유전성 암 검사를 하며 특히 신생아와 산모검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제약업체들이 이 사업을 통해 수집한 유전자 데이터 정보를 모으고 장기적으로 개인적 맞춤 의학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동아ST는 개인을 상대로 한 유전자 분석 시장에 직접 진출하지는 않았지만 생명공학 벤처인 마크로젠과 함께 신약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들은 종양과 알츠하이머병 등에 대해 유전체 분석 기술을 이용해 신규 약물 표적 유전자를 발굴하고, 이를 통해 신약을 개발한다는 전략이다.

[이새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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